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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Aug. '인공지능과 두려움'

“공포는 지혜를 찾아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첫번째 적이다.” 

소설 '람세스'에서 야생황소와 마주했던 아들 람세스에게 아버지 파라오가 던진 말이다. 공포는 불안장애(anxiety disorder)의 하위개념이다. 불안장애는 공포 외에도 분리불안, 범(凡)불안장애,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이중에서 공포는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을 마주할 때 발생하는 특정공포,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일을 회피하는 사회공포, 넓은 광장과 같은 특별한 주변환경에 놓일 때 겪게 되는 광장공포나 폐쇄공포 등이 있다고 한다.

소년 람세스에게는 날카로운 뿔을 들이대고 달려드는 성난 황소가 특정 공포의 원인이었겠으나, 저마다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의 색깔이 다르니, 가슴 조이는 두려움과 공포의 보편적 근원은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일은 두려움과 공포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도전, 생명의 계속성에 위협을 느껴 편안함과 평정심을 잃게 될 때 발생하는 것 같다. 역설적인 것은 편안한 상태에서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가장 많은 학습을 한다. 그런 이유로 학습은 공포와 두려움이 낳는 긍정적 결과이며, 공포와 두려움이 낳는 부정적 결과가 불안장애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20 May. '집단지성과 식탁'

파리 몽마르트 언덕을 거닌 적이 있었다. 불쑥 다가온 웬 화가는 손사래 치는 나의 얼굴을 삐쩍 마른 손으로 재빨리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몇 분만에 데생 도화지를 내 눈에 들이댄다. “가난한 화가 같은데, 웬만하면 사줘야지!”하는 생각으로 척 본 인물화가 나 같지 않았다. 전혀 닮지 않았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니 화가의 말이 걸작이다. “난 사진사가 아니오! 예술가적 비전으로 그렸다고요!” 기막힌 답변에 탄복하여 구매한 그림은 다시 보아도 정말 안 닮았다.

예술가들이야 현상의 독창적 과장과 왜곡이 차별적 가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개념에 대한 학자들의 과장된 정의와 왜곡은 가치보다는 문제에 가깝다. 품질관리(quality control)와 품질경영(quality management)의 사례가 그렇다. 먼저 나온 영 단어 control 에 ‘관리’를 붙여 버렸으니, 그 다음에 등장한 management를 ‘경영’이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경영이 매니지먼트보다는 추상화레벨이 더욱 높은 개념임에도 말이다.

이러한 용어의 과장된 번역과 왜곡은 정보기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계층형데이터베이스(hierarchical database)는 1:N의 다단계 트리 구조로 하나의 루트를 가진 DB 구조를 가졌다. 그러나 N:M의 인덱스를 지원하는 또 다른 데이터베이스구조가 발명되었다. 한 데이터 속성이 여러 곳을 인덱싱 하는 DB스키마의 모양새가 마치 얽힌 그물과 같아서인지 찰스 바크만(Charles Bachman)은 이를 네트워크데이터베이스(network database)라 호칭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성급하게 붙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트워크데이터베이스의 옳은 명칭은 ‘cross index DB’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2020 Mar. '나무'스키마, '넝쿨'스키마

델파이법(Delphi method)이라는 의사결정기법이 있다. 그리스어로 ‘델피’, 고대 그리스어로는 ‘델포이’ 라 불렸던 도시국가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델피는 지금은 몇 개 기둥만 남아 폐허가 되어버린 산 중턱의 아폴로 신전이 유명하며, 아폴로가 ‘예언의 신’이기도 하니 당시에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참배객들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델포이에서 국가적인 이슈가 생기면 ‘퓌티아’라 불리던 여 사제가 신전의 뒤편 동굴 아래에서 올라오는 유황가스에 취하여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고, 남자 사제들은 이를 오라클(신탁)로 해석하여 시민에게 선포했다고 한다. 이런 사유로 미래를 예측하는 전문가적 의사결정 기법에 생뚱맞은 ‘델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델피의 사제가 전한 신탁은 절대적이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나는 일로 간주 되었는데, 시점이나 표현을 모호하게 만들어서 신탁의 해석이 모두 그럴 듯 했다고 한다. 당시의 사제들은 여러 나라에 깔아 놓은 정보원을 통하여 국제정세에 관련된 고급정보에 접근하려 노력했을 것이고, 신탁의 권위를 깨지 않을 예언을 구상하기 위해 집단지성을 활용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2020 Feb. 신화와 시간, 그리고 코로나

전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Haunted World)’에서 과학을 ‘깜깜한 어둠 속의 촛불’로 비유하며, 사람들이 암흑과 같은 사이비과학(pseudoscience)에 현혹되지 않도록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의 빛을 가져야 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은 참혹한 역사를 생각할 때, 과학적 근거가 없는 편향된 신념이 불러일으킬 위험을 경고한 그의 주장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인문학자는 과학 지상주의의 폐단을 말한다. 그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더라도 상상력은 인류 발전의 동력이라고 일갈한다. 그리스/로마신화는 물론이고 종교경전 속의 신화적 스토리는 인간공동체의 귀중한 지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과 ‘헤리 포터’와 같은 판타지 소설은 물론 재미난 액션 어드벤처 게임 역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비과학적 상상력은 문명을 진보시켰고,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를 축적했다. 사회 파괴적인 사이비 과학에는 유의해야 하지만, 지나친 합리주의 철학이 사회복리를 저해할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도 설득력은 있다. 

이처럼 과학과 사이비과학, 사실과 신화는 마치 평행저울처럼 상대가 있음으로써 존재하는 실체이다. 그렇게 때문에 둘 다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양비론(兩非論)이 일리가 있다면, 양쪽을 절충하는 중심개념이 필요해진다. 결국은 생각하는 주체로서 인간의 절제된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양극단의 주장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떤 지혜를 가져야 할까? 우리는 신화적 비유로 현재의 상태를 해석하기도 하고, 과학적 이론으로 신화 속에 내재한 합리적 지혜를 건져 올리기도 한다. 상상력(신화)으로 과학을 비유하고, 과학으로 상상력을 판단하는 접근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접근을 위한 좋은 스토리가 시간에 대한 신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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