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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DEC. 호모데우스 말고, 더불어 즐기는 사람

서사시처럼 인류 탄생의 스토리를 써내려 간 ‘우주여행(Journey of the Universe)’ 이라는 책이 있다. 진화의 시원을 173억년전 빅뱅 시점의 암흑물질까지 거슬러 올라 가는 설명이 이채롭다. 책의 내용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글은 인류 진화의 원동력을 젊은 세대에서 찾는 다음의 글이다.

"어린 포유동물의 행동은 성인의 관심과 다릅니다. 그들이 몰두하는 일은 놀이 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탐험합니다. 그들은 입으로 맛봅니다. 그들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많은 것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들은 놀이를 통해서 살아있는 충만함을 발견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젊은이들의 욕구와 욕망이 기성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적 제약을 깨부수는 융통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젊은 세대의 놀이가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사고의 틀을 깨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된다는 의미이다.

플라톤은 머리를 이성과 지성이 거하는 곳, 심장을 의지와 도덕이 발휘되는 곳, 위장을 욕구와 욕망이 발생되는 곳이라 정의했다. 그래서 훌륭한 인간은 선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고, 자신의 의덕(意德)을 통해서 욕구를 절제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2021 Oct. 페이스북, 너 누구냐?  

페이스북의 비도덕적 경영행태에 대하여 프랜시스 하우겐 Frances Haugen의 내부고발이 IT업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녀가 미국 상원에서 증언한 내용에 따르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에 미치는 해악을 무시하였다.

 

또한 수익 우선의 알고리즘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가짜정보와 여론 조작을 방관하였으며, 대테러 모니터링을 등한시함으로써 사회 안전에 위협을 주었다. 이번 일을 나름 풀어 본다면,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whistleblower)가 “너 누구냐?”하며 기업 정체성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 사건이라 해석한다.

 

정체성이란 존재할 이유와 관계된다. 그러므로 기업에게 “너 누구냐?”하며 묻는 일은 결국 회사의 존재이유를 따지는 것과 같다. 공동체에게 주는 이익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적지 않다면 이처럼 기업의 정체성은 도전 받게 된다.

 

정체성은 개인과 그룹의 개념에 차이가 있다. 개인에게 정체성이란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게 만드는 특성이다. 이를 테면 멘탈 모델, 행동패턴, 경험이력, 자의식과 자존감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것을 모두 포괄한다. 사람이 정체성에 혼돈이 생기면 중음신(中陰身)처럼 떠돌며 삶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다.

반면에 기업 정체성은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유사성에 관련된다. 이러한 유사성은 구성원 간에 합의된 명분이나 공유된 비밀, 소속감, 역할 활동과 같은 것이며, 제복과 위계, 집단에서만 사용되는 언어, 관행이나 예식, 공유된 기업 철학과 직업윤리 등으로 표출된다. 기업 정체성이 혼란에 빠지면 이탈하는 직원이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직원 이직률은 기업의 계속사업을 예측하는 훌륭한 측정지표이기도 하다.

2021 Aug. 메타버스와 오염된 피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감정은 공포이며,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다.” 

괴기스러운 ‘크툴루’ 환타지 세계의 창시자인 소설가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의 말이다. 그의 말을 바꾸어 말한다면, 다가올 일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면 무서움이 덜하다는 뜻과 통한다.

‘예측 가능성’은 철길을 따라 가듯 현재의 일이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라는 ‘선형적 믿음’에서 출발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맥락상 선형적이다. 관성과 중력이 통하고, 힘을 가하면 구부러지거나 늘어난다. ‘뉴턴의 법칙’과 같은 물리학 공식으로 계산하고 예측할 수 있다.

이론을 만들어 내는 연구방법인 연역법과 귀납법도 선형적 논리의 연장선에 있다. 독립변수의 변화에 따른 종속변수의 추이를 예측하는 회귀분석도 선형적인 미래 예측법의 하나이다. 축적된 데이터로서 미래를 예측하는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역시 과거의 패턴이 미래에도 높은 확률로 계속될 것이라는 선형적 믿음에 기반한다.  러브크래프트의 통찰과 같이, 인류는 선형적인 가정에 기반한 예측 이론으로 미지의 공포를 극복해 왔다.

그러므로 공포는 불연속을 대면할 때 발생한다. 사람들은 현재가 뻗어져 나간 경로 상에 있는 미래를 그려보지만, 기대와는 아주 딴판인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면 두려움을 느낀다. 기울어진 방향을 서서히 바꾸는 곡선은 직선은 아니지만 선을 따라가니 맥락상 선형적이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나거나 갑자기 끊어져 버린 기차길처럼, 원인과 궤적을 추적할 수 없는 불연속의 미래는 선형적이지 않다. 불연속의 사건은 도대체 가늠이 안되고 계산할 수 없으니 두려운 것이다.

2021 June. ESG 경영과 MSG 조미료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조상 중에는 어렸을 때 죽은 자는 하나도 없다.” 유명한 진화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에덴의 강’이라는 책의 1장에서 독자에게 던진 말이다. 그의 말대로 수천 세대에 걸쳐서 우리의 조상은 성년이 되기 전에 죽지 않았고, 하나 이상의 배우자를 만나 후대에 자녀를 둔 성공적인 사람들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미래의 우리 후손은 어떨까? 우리의 노력 여하를 떠나서 지구 환경이 나빠진다면 예단하기 쉽지 않다.

개인의 생존과 결혼 의지와 별개로 무분별한 자원착취, 화석 에너지 남용에 따른 이산화탄소의 균형조절 실패는 갈수록 우리가 살아갈 지구 가정(家庭)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2000년의 UN MDG(새천년개발계획), 그리고 2016년에 시작된 UN SDG(지속가능발전계획) 프로그램이 이러한 걱정에 대한 초국가적 응답이었다.

P4G 서울정상회의가 최근 종료되었다. 이 회의 역시 UN SDG의 맥락과 같은 선상에 있다. UN SDG의 핵심 키워드는 누가 뭐라 하던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너무 달라서, UN이 오랜 전에 답안을 내 놓았다. 1987년 노르웨이 총리 출신인 할렘 브룬틀란은 ‘우리들 공통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미래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위태롭게 하지 않고 현 세대의 욕구를 충족 시키는 발전’이라 정의했다.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에 방점을 둔 정의다.

2021 Apr. 대리인 경영론

미소 냉전의 긴장감이 고조됐던 1961년 9월 25일, UN 총회장 연단에 오른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연설 시작 8분 여만에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모든 남녀와 아이들은 사고, 오판 혹은 미친 짓 때문에 언제든 떨어질 지 모를, 가장 가는 실에 매달린 다모클레스의 핵폭탄 칼(a nuclear sword of Damocles) 아래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명해진 다모클레스의 칼(Sword of Damocles)은 로마시대의 정치가이며 철학자인 키케로(Cicero)가 말년에 쓴 ‘투스쿨란의 대화(Tusculanae disputations)’ 5권 21장에 실린 스토리에서 유래했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하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시라쿠사(Siracusa)의 폭군 디오니시우스(Dionysius)는 25살에 정권을 장악하여 38년 동안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 권력자 밑에는 아첨배도 있는 법. 신하인 다모클레스는 주인의 재산, 강력한 권력, 무한한 즐거움, 황홀한 궁전 등. 그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왕처럼 행복할 수 없다며 칭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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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Feb.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와 디지털 역량(DC)

인터넷이 널리 알려지기 이전인 1995년 인터넷 카페를 방문한 적 있다. 모뎀에 연결하여 사용하는 비디오텍스(videotex) 기반의 하이텔, 천리안이 원시적 소셜 미디어로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엔 IT업계의 직장인들에게도 하이퍼텍스트로 서핑 하는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 만큼 홍익대학교 앞에 ‘NETSCAFE’ 인터넷 카페가 개점했다는 뉴스는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카페 사장과 연락이 됐고, 모시던 상사와 함께 홍대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났던 K대표의 말이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인터넷은 기득권층이 독점해온 정보에 일반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하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더욱 가속시킬 것이며, 자신은 사명감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고교 동창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그를 나는 한동안 알아보지 못했다. 그만큼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인터넷 트랜스포메이션으로 변화될 미래를 내다본 나비였고, 나는 “뭔 말이지?”하는 애벌레였다.

2020 Dec. 데밍과 능력주의(Meritocracy)

다가오는 12월 20일은 품질경영의 구루인 윌리엄 에드워드 데밍(William Edwards Deming)이 1993년 93세의 나이로 소천한 날이다. 데밍이 유명해진 이유는 1, 2차 오일쇼크 이후에 급등한 일본 자동차의 인기를 의아하게 여긴 미국 자동차업계가 일본의 품질경영을 벤치마킹 하면서부터이다.

한반도는 전쟁의 도가니였던 시절, 태평양전쟁의 폐허에서 부흥을 꿈꾸던 일본의 산업계 리더들은 데밍(1950년)과 조셉 주란(1954년)을 초대하였고, 그들에게서 미국을 이길 해법을 통계적 품질관리에서 찾았다. 데밍의 영향이 얼마나 컸던지, 일본의 품질관리대상은 ‘데밍상(Deming Award)’으로 명명되었다.

데밍이 주장한 과학적 품질관리 경영은 그의 말대로 슈와르츠(Walter Shewhart)의 연구에 빚을 지고 있지만, 일본의 전문가들은 데밍의 가르침을 PDCA(Plan, Do, Check, Act) 사이클로 축약하여 이를 ‘데밍사이클’이라 불렀다. 그러나 정작 데밍은 PDCA 사이클이란 용어를 자신이 만든 바가 없다고 이야기했으며, 자신의 이론적 유산을 슈와르츠에게 돌리는 겸손함을 보였다.

2020 Oct. '무시로 갈무리하라!'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시니어 가수의 추석맞이 ‘대한민국 어게인’ 이벤트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눈을 맞추고 호흡하며 노래를 불러 왔을 일흔 넘은 백발가수의 대표곡 중에 ‘무시로’와 ‘갈무리’라는 제목이 새롭게 다가왔다. 별 생각 없이 들었던 노래였는데,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이들 단어의 의미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무시로’의 말뜻은 ‘시시때때로’ 혹은 ‘수시로’의 방언이라 하고, ‘갈무리’는 ‘저·장 정리하다’ 혹은 ‘잘 마무리하다’라는 표준말이다. 그러므로 두 단어를 합쳐서 ‘무시로 갈무리하라’는 말은 ‘그때 그때 일을 잘 마무리하라’는 뜻이 된다. 인생에서 그때 그때 일을 잘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기업의 경우도 과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무시로 갈무리’하는 일은 모든 관리자들의 업무원칙이 될 것이다. 스타트업(start-up)의 경영기법에 그때 그때 일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으로 ‘OMTM(one metric that matters)’이라는 개념이 있다.

2020 Aug. '인공지능과 두려움'

“공포는 지혜를 찾아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첫번째 적이다.” 

소설 '람세스'에서 야생황소와 마주했던 아들 람세스에게 아버지 파라오가 던진 말이다. 공포는 불안장애(anxiety disorder)의 하위개념이다. 불안장애는 공포 외에도 분리불안, 범(凡)불안장애,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이중에서 공포는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을 마주할 때 발생하는 특정공포,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일을 회피하는 사회공포, 넓은 광장과 같은 특별한 주변환경에 놓일 때 겪게 되는 광장공포나 폐쇄공포 등이 있다고 한다.

소년 람세스에게는 날카로운 뿔을 들이대고 달려드는 성난 황소가 특정 공포의 원인이었겠으나, 저마다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의 색깔이 다르니, 가슴 조이는 두려움과 공포의 보편적 근원은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일은 두려움과 공포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도전, 생명의 계속성에 위협을 느껴 편안함과 평정심을 잃게 될 때 발생하는 것 같다. 역설적인 것은 편안한 상태에서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가장 많은 학습을 한다. 그런 이유로 학습은 공포와 두려움이 낳는 긍정적 결과이며, 공포와 두려움이 낳는 부정적 결과가 불안장애가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20 May. '집단지성과 식탁'

파리 몽마르트 언덕을 거닌 적이 있었다. 불쑥 다가온 웬 화가는 손사래 치는 나의 얼굴을 삐쩍 마른 손으로 재빨리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몇 분만에 데생 도화지를 내 눈에 들이댄다. “가난한 화가 같은데, 웬만하면 사줘야지!”하는 생각으로 척 본 인물화가 나 같지 않았다. 전혀 닮지 않았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니 화가의 말이 걸작이다. “난 사진사가 아니오! 예술가적 비전으로 그렸다고요!” 기막힌 답변에 탄복하여 구매한 그림은 다시 보아도 정말 안 닮았다.

예술가들이야 현상의 독창적 과장과 왜곡이 차별적 가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개념에 대한 학자들의 과장된 정의와 왜곡은 가치보다는 문제에 가깝다. 품질관리(quality control)와 품질경영(quality management)의 사례가 그렇다. 먼저 나온 영 단어 control 에 ‘관리’를 붙여 버렸으니, 그 다음에 등장한 management를 ‘경영’이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경영이 매니지먼트보다는 추상화레벨이 더욱 높은 개념임에도 말이다.

이러한 용어의 과장된 번역과 왜곡은 정보기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계층형데이터베이스(hierarchical database)는 1:N의 다단계 트리 구조로 하나의 루트를 가진 DB 구조를 가졌다. 그러나 N:M의 인덱스를 지원하는 또 다른 데이터베이스구조가 발명되었다. 한 데이터 속성이 여러 곳을 인덱싱 하는 DB스키마의 모양새가 마치 얽힌 그물과 같아서인지 찰스 바크만(Charles Bachman)은 이를 네트워크데이터베이스(network database)라 호칭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성급하게 붙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트워크데이터베이스의 옳은 명칭은 ‘cross index DB’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2020 Mar. '나무'스키마, '넝쿨'스키마

델파이법(Delphi method)이라는 의사결정기법이 있다. 그리스어로 ‘델피’, 고대 그리스어로는 ‘델포이’ 라 불렸던 도시국가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델피는 지금은 몇 개 기둥만 남아 폐허가 되어버린 산 중턱의 아폴로 신전이 유명하며, 아폴로가 ‘예언의 신’이기도 하니 당시에는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참배객들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델포이에서 국가적인 이슈가 생기면 ‘퓌티아’라 불리던 여 사제가 신전의 뒤편 동굴 아래에서 올라오는 유황가스에 취하여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고, 남자 사제들은 이를 오라클(신탁)로 해석하여 시민에게 선포했다고 한다. 이런 사유로 미래를 예측하는 전문가적 의사결정 기법에 생뚱맞은 ‘델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델피의 사제가 전한 신탁은 절대적이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나는 일로 간주 되었는데, 시점이나 표현을 모호하게 만들어서 신탁의 해석이 모두 그럴 듯 했다고 한다. 당시의 사제들은 여러 나라에 깔아 놓은 정보원을 통하여 국제정세에 관련된 고급정보에 접근하려 노력했을 것이고, 신탁의 권위를 깨지 않을 예언을 구상하기 위해 집단지성을 활용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2020 Feb. 신화와 시간, 그리고 코로나

전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The Demon-Haunted World)’에서 과학을 ‘깜깜한 어둠 속의 촛불’로 비유하며, 사람들이 암흑과 같은 사이비과학(pseudoscience)에 현혹되지 않도록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의 빛을 가져야 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은 참혹한 역사를 생각할 때, 과학적 근거가 없는 편향된 신념이 불러일으킬 위험을 경고한 그의 주장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인문학자는 과학 지상주의의 폐단을 말한다. 그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더라도 상상력은 인류 발전의 동력이라고 일갈한다. 그리스/로마신화는 물론이고 종교경전 속의 신화적 스토리는 인간공동체의 귀중한 지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과 ‘헤리 포터’와 같은 판타지 소설은 물론 재미난 액션 어드벤처 게임 역시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러한 비과학적 상상력은 문명을 진보시켰고,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를 축적했다. 사회 파괴적인 사이비 과학에는 유의해야 하지만, 지나친 합리주의 철학이 사회복리를 저해할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도 설득력은 있다. 

이처럼 과학과 사이비과학, 사실과 신화는 마치 평행저울처럼 상대가 있음으로써 존재하는 실체이다. 그렇게 때문에 둘 다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양비론(兩非論)이 일리가 있다면, 양쪽을 절충하는 중심개념이 필요해진다. 결국은 생각하는 주체로서 인간의 절제된 균형감각이 중요하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양극단의 주장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떤 지혜를 가져야 할까? 우리는 신화적 비유로 현재의 상태를 해석하기도 하고, 과학적 이론으로 신화 속에 내재한 합리적 지혜를 건져 올리기도 한다. 상상력(신화)으로 과학을 비유하고, 과학으로 상상력을 판단하는 접근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접근을 위한 좋은 스토리가 시간에 대한 신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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