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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OCT.  스마트하게 접어라

일기예보 기자가 내일은 “폭설이 예상되니 차를 두고 출근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고집스럽게 차를 몰고 나온다. 사륜구동 SUV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이 걸작이다. “새 차는 4계절을 다 겪어야 진정으로 내차가 되는 거야!” 일리가 있다.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이라고 차를 주차장에 두고 다닌다면, 어려운 상황에서 나의 운전 능력도 늘지 않을 것이고 내 차의 성능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렇게 4계절 전국을 누비고 다닌 내 차라면 더욱 애착이 간다.
 

선남선녀가 결혼을 했다. 20년이 넘게 금전적 부족함도 없고, 생활여건이 좋았는데 갑자기 집에 고민거리가 생겼다. 일방의 외도 문제가 아니다. 부부를 몹시 귀찮게 하는 고민거리가 생긴 것이다. 어려움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게 만든다. 그래서 짜증을 부릴 만도 한데, 부인은 인내심 있게 남편의 정신적 지원자로 길을 같이 한다. 그 남편 왈 “고생을 같이 극복을 하였으니, 이제 진정 내 마누라가 된 거야!” 진실한 가장이라면 고생을 같이한 조강지처를 배신할 수 없다. 애정 이상의 느낌, 즉 애착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보기에는 잡동사니에 불과한 허접한 물건을 못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물건을 바라볼 때면 떠오르는 애착 때문이다. 이를 영어로는 'Personal Attachment'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말로는 ‘사적 애착’이라고 번역된다. 지인이 서명한 오래된 책,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시던 공구, 외국여행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토산품, 친한 친구가 선물한 기념품, 학창시절에 받은 상장, 늙은 어머니가 떠준 스웨터 등. 시장가치로는 의미가 없지만, 밖에 내다 버릴 수가 없는 이유는 사적 애착 때문이다.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창업자도 회사에 대한 사적 애착이 발생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히 공을 들여온 회사와, 월화수목금금금 늦도록 같이 일해온 동료와의 스토리는 아주 강력한 사적 애착을 만든다. 이런 애착 때문에 창업자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 회사를 붙잡고 “조금만 더, 몇달만 더” 하지만 경영상황이 더이상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투자전문가들은 "스타트업이 5년이 지나도록 가시적 사업성과가 없다면 빨리 접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기업가는 애착의 스토리를 쌓아가는 인문학자가 아니다. 비즈니스 모델의 검증을 위해 5년 동안 에너지를 쏟아 부었지만, 효과가 없다면 2가지 원인 중의 하나이다. 첫째는 비즈니스 모델의 검증기간이 5년 이상일 수 있다. 둘째는 시장에서 비즈니스 모델이 효과가 없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이런 사업을 이리저리 5년 이상 붙들고 있다면, 창업자의 청춘도 아울러 사라진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2번, 3번 정도의 창업을 해보려면 5년이 최고로 긴 시간이다. 지금의 사업을 5년 동안 꾸려왔고,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면 비즈니스 모델의 성장 가설은 이미 틀린 것이다.

2024 AUG.  욕망의 길을 찾아라

영화의 한 장면. 주인공이 길을 잃었다. 먹지도 못하고 종일 헤매다 보니, 기력도 바닥이고 온몸이 쑤신다. 밤이 오면서 기온이 떨어진다. 몸은 이슬에 젖어 바들거리고, 이러다가 정신줄을 놓쳐 버리면 필히 얼어 죽을 판이다. 그 때 정말 우연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치는 불빛이 보인다. 주인공은 “아! 살았다!”라고 외치며, 수풀을 헤치며 그쪽으로 잰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도착한 불빛의 근원지가 그를 살리는 곳일까? 마적의 소굴이라 죽을 곳 인가? 드라마는 “다음에 계속”하며 마감된다.

동물들도 이런 일을 겪는다. 그래서 장거리를 이동하는 무리 동물들은 자신들의 안전한 길을 낸다. 그 길은 대개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검증된 길이다. 아프리카 정글에는 코끼리가 다니는 길, 무소 떼가 다니는 길이 다르다. 들개가 다니는 길, 멧돼지가 다니는 길, 뱀이 다니는 길도 서로 다르다.

초식동물이라면 물이나 먹을 것을 찾기 쉽고, 천적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도망치기 쉬운 공간에 길을 만든다. 경험이 많은 무리의 리더는 선조로부터 배운 길을 알고 있다. 그래서 먹을 것이 궁해지면,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무리를 이끌고 앞장서 길을 나선다. 소낙비가 중력의 힘으로 물길을 만들 듯, 무리의 생존에 가장 효율적인 길을 만드는 것이다.
보자.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신도시가 생겨서 기하학적으로 아름다운 조경을 해 놓아도, 행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통로를 찾아 잔디밭과 조경수 사이로 발자국 길을 만들어 놓는다. 좋은 통로가 꼭 최단거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행자는 보통 정상길과 최단 길 중간의 절충선을 만든다고 한다. 걷는 목적에 따라 꼬불꼬불 언덕빼기 산책길도 생겨 있고, 약초나 산삼을 캐는 심마니들이 만들어내는 은밀한 숲속 길도 생겨난다.

조경학이나 도시공학에서 이런 길을 희망선(길) 혹은 욕망선(길)이라 부른다. 영어로는 Desire path 또는 Desire line이라 한다. 만약에 목적지의 끝이 먹을 물이 솟구치는 샘이라면 욕망샘, 먹기 좋은 풀들이 널린 초원이라면 욕망땅이라 부를 만하다.

 

2024 JUN.  난 한 놈만 패

"나는 한 놈만 패."

영화 주유소습격사건의 유오성 배우가 남긴 명대사이다. 이영화를 메타포로 활용하여 스타트업의 목표관리 방안을 풀어보려 한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은 사업역량이 부족하다. 이는 자원 인프라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 경험이 없는 스타트업 창업자 그룹의 경우 인적자원도 부족하다. 창업 구성원과 CEO 모두가 ‘넘치는 열정에 딸리는 실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5년 동안 너울 거리는 높은 파도를 넘어야 한다. 마치 영화에서 유오성이 떼거지로 달려드는 양아치들을 상대하는 것처럼 엄청난 일이다.

진화발생생물학에서는 배아가 세포분열을 하는 동안에 진화의 전과정을 빠르게 거친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사람의 태아는 올챙이처럼 물고기, 양서류의 모양을 거쳐서 사람이 된다. 특이점은 성체가 되는 과정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 오히려 세포사멸(programmed cell death)에 있다는 데 있다.

세포사멸이란 만들어진 세포가 죽어 없어져야 완전한 모양을 갖추는 역설적 이론을 말한다. 주걱 모양을 가진 태아의 손이 제 모양을 갖추려면 손가락 사이사이에 있던 세포가 죽어버려야 하는 현상과 같다. 이 세포사멸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람의 손은 물갈퀴 모양이 되고, 남성은 자궁과 난관을 갖고 태어나게 된다. 반면에 통제되지 않는 세포사멸이 과도해 지면 뇌졸중, 알츠하이머, 에이즈와 같은 난치병이 초래된다. 세포사멸을 적절히 촉진하면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할 수도 있다고 한다.
보자.

2024 Apr.  여자에게 물어봐

미국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페즈(Pez)라는 사탕 브랜드가 있다. ‘페퍼민트’에서 회사명 PEZ를 따 왔다고 한다. 페즈 캔디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명됐고, 1952년에 미국에 진출했다. 이 회사는 강낭콩처럼 생긴 동일한 모양의 캔디 12개를 포장지에 싸서 판매한다.
주목할 사건은 페즈가 사탕을 하나씩 꺼내 먹을 수 있는 ‘디스펜서’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디스펜서는 1957년에 만들어졌다. 그 모양은 세워 놓을 수 있는 권총의 탄창 형태인데, 맨 위에 귀여운 캐릭터 머리를 얻었다. 머리를 당기면 사탕이 하나씩 튀어나온다. 캐릭터는 미키 마우스, 스펀지밥, 마리오, 아이언 맨 등. 아이들이 좋아할 수많은 캐릭터가 있다. 페즈 수집광은 진열장에 수백개의 디스펜서 모델을 늘어놓고 좋아한다. 생산이 중지된 귀한 디스펜서는 고가에 거래도 된다.
페즈는 미국의 굴지 기업인 이베이의 창업스토리와 관계가 있다. 프랑스 태생의 이란계 미국인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아(Pierre Omidyar)는 회사 창립의 스토리를 그럴 듯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페즈 디스펜서를 모으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 하여 이베이 전신인 옥션웹(AuctionWeb)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eBay에서는 이 창업 이야기가 꾸며진 스토리라 밝혔다.
스토리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창업자 오미디어는 소비자의 마음에 오래 기억될 기가 막힌 창업 스토리를 엮었다. “이베이는 여자친구를 위하는 착한 마음으로 창업했다”는 메시지이다. 애플에서 Apple Evangelist라는 용어를 만든 가와사키(Guy Kawasaki)는 페즈 스토리를 그의 강연에서 여러번 언급했다. 그의 책 ‘스타트업의 기술(the art of the start)’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성공으로 이끄는 아주 특이한 방법의 사례로 말이다. 그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하려면 다음의 세가지에 유의하여야 한다고 설파한다.
첫째는 구체화이다.(Be specific) 고객이 제조회사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회사 내의 어떤 사람이 목표 고객인지 특정하라. 둘째, 단순한 비즈니스모델이다.(Keep it simple) 혁신제품은 좋다. 그러나 세상에 없었던 복잡한 비즈니스 모델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여기까지의 가와사키 코멘트는 이해할 만하다. 특이한 제안은 마지막 조건이다. 셋째, 반드시 여자에게 물어봐야 한다(Ask women). 뭔 소리인지 말의 맥락을 옮겨보자.

2024 FEB.  IT 해적정신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피카소가 말했다는 이 말을 스티브 잡스도 많이 언급했다. 모방과 훔침의 차이는 무엇일까? 혹자는 모방은 원리에 대한 이해 없이 복제하는 일이고, 훔침은 원리를 알아채서 다른 것을 만드는 일이라 말한다. 나는 현대적 의미의 훔침을 ‘해적정신 ‘이라 푼다. 해킹과도 통하는 말이다. 


유명한 거리 미술가인 뱅크시(Banksy)는 피카소의 말을 해적처럼 멋지게 훔쳤다. “나쁜 예술가는 따라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The bad artists imitate, the great artists steal.” 돌 위에 이글을 쓰고는 파블로 피카소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그 밑에 자기 이름을 썼다. 인터넷 검색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뱅크시가 처음 만든 말로 인용할 판이다. 


훔치는 일은 어떤 것일까? 1979년 스티브 잡스는 투자제안을 미끼로 제록스의 팔로알토연구소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는 윈도우의 원형을 발견하고, 직감적으로 이것이 미래 GUI의 혁신기술이 될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LISA와 매킨토시에 윈도우 GUI를 넣는다. 그것이 제록스보다 탁월하였음은 물론이다. 기술 해적질이다. 잡스처럼 훔치려는 자는 원래보다 더 좋게 만들려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2023 Dec. K-자유투와 해적경영

미국 NBA 농구계에서 한국의 뱅크슛이 화재가 되었다.  우리 선수들이 자유투를 던질 때, 농구대의 백보드를 맞추어 득점하는 플레이를 본 어떤 캐나다 사람의 글이 촉발시킨 논란이다. 혹자는 이를 'K-자유투’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별로 이상하지 않은 뱅크슛 자유투 스타일이 미국 농구계에서는 익숙하지 않다고 하니 이유가 궁금해졌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농구는 농구 골대의 바스켓에 바로 넣는 자유투 스타일을 최고로 친다. 선수가 던진 농구공이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바스켓에 빨려 들어가 그물을 툭 흔들며 득점하는 모습을 보고 관중들은 환호한다. 그런데 NBA에 진출한 우리 선수가 백보드를 맞추어 득점하니 선수는 물론 관중들도 키득키득 웃더라는 것이다. 백보드를 맞추고 운 좋게 공이 들어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외국 스포츠 평론가가 본 한국 농구장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K-자유투를 본 우리 관중은 웃지도 않을뿐더러, 선수 역시 거리낌 없이 뱅크슛을 하는 모습이 이상했나 보다. 그래서 그는 무엇이 두나라 관중의 태도를 다르게 만들었는지 심층 취재를 했다고 한다.

2023 Oct. 플랫폼과 '올가'라는 이름의 열차

보통 관리자는 직원들이 질서를 잘 따르도록 만든다. 그러나 관리자는 새로운 질서(영어로 Norm이라고 부른다)를 만들 권한은 없다. 반면, 리더는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세상이 바뀌어 모두의 예상과 달리 앞뒤가 안맞을 때, 질서의 재편이 필요한 시점이 된다. 바로 탁월한 리더가 두각을 나타낼 때이다.

IT업계에서도 기존 질서를 부수고, 새로운 질서의 생태계를 만드는 특출난 이들이 있다. 바로 플랫폼 오너이다. 글로벌 플랫폼 오너로는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에어비앤비, 우버 같은 회사이다. 카카오와 네이버도 우리나라의 플랫폼 오너들이다.

플랫폼은 ‘펴진’이나 ‘평평한’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platnus에서 유래했다. 기차역 ‘플랫폼’의  바로 그 단어다. ‘기차’라고 하니 영화 ‘설국열차’가 생각난다. 영화에서 총리로 등장한 여배우는 저항세력을 향해서 이런 대사를 날린다. 

“우리가 집으로 삼은 이 기차에서 단 하나만이 우리를…지켜준다. 옷? 보호막? 아니, 질서!”

2023 Aug. 마이크로바이옴과 미시권력

최근의 뇌과학은 인간을 구성하는 단위 세포의 협업에 새로운 통찰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세포가 서로 간에 긴밀히 협업하는 현상을 보면 마치 세포 하나 하나가 지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장이나 장, 근육 및 감각기관에도 머리에 있는 뉴런 세포가 발견되는 일도 그런 증거입니다. 그런데 비록 인간 세포는 아니지만, 장에 공생하는 미생물과의 협업도 건강한 삶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최근에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장내 세균의 생태환경을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 합니다. 인간 장 속의 마이크로바이옴은 600만년 동안 인류와 같이 상호영향을 주며 공진화 하였다고 합니다. 인체의 세포수는 대략 30조로 말해집니다. 반면 장 속 마이크로바이옴의 수는 38조로 추정됩니다. 몸중량이 70키로그램일 경우 마이크로바이옴은 200그램에 불과하지만, 우리 몸의 유전자 개수보다 몇 배 많다고 추정됩니다.

2023 JUN.AI와 공감의 뿌리, 그리고 인공감성(AE)  

최근 또래 여성살해를 저지른 한 젊은이의 행각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살인자는 특별한 원한도 없는 다른 여성에게 악마와 같은 짓을 벌였다. 그녀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듯하고, 조부와 함께 성장했다고 한다. 이런 사건을 마주하면서,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어떤 지식인은 사람다움에 대한 두가지 키워드를 꼽고 이렇게 말했다. ‘인간성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성질을 말하고, 인간미는 다른 사람에게 풍겨주는 사람다운 맛’이다. 달리 해석하면 인간성은 인간이라 불릴 수 있는 본성의 완성도로 해석되고, 인간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드러나 보이는 본성의 표출도로 이해된다. 즉 인간미는 관계속에서 드러나 보이는 특성이고, 인간성은 관계없이도 설명가능한 본질가치라는 말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는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시간을 달리하는 두 건의 살해 사건이 등장한다. 첫째는 인류의 조상으로 간주되는 털북숭이 유인원이 도구를 이용하여, 동료 유인원을 살해하는 슬로우 모션 장면이다. 두번째 살해장면은 자의식이 생긴 우주선의 AI 컴퓨터 ‘HAL’이 시스템을 정지시키려는 우주조종사를 살해하는 장면이다.

2023 APR.AI를 앞지르는 비선형 멘탈 

예전 직장의 출입문 앞에는 두더지 잡기 게임기계가 놓여 있었다. 처음 방문한 내게 고무망치를 내주면서 해보라고 권한다. 두더지 머리마다 '차별, 불평등'과 같은 부정적인 말들이 써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두더지는 머리를 내려치려는 나를 비웃듯 매번 구멍 속으로 쏙 사라진다. 어쩌다 머리를 맞추면 어깨에 전달되는 고무망치의 탄력감이 짜릿하기도 하다. 그러나 도대체 언제 어느 곳에서 머리를 쑥 들이 내밀지 모르니, 손에 쥔 방망이는 대부분 허공만 가른다.

두더지 잡기 게임의 패턴을 연구해 보았다. 저급한 기계라면 올라오는 순서가 항상 같을 것이다. 난수 발생 프로그램을 써서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컴퓨터를 좀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난수 발생 프로그램의 초기값(Seed, 시드 값)이 동일하다면, 두더지 머리가 올라오는 순서는 항상 같게 된다. 시드값을 시간마다 달라지는 외부 요소로 입력하는 방식을 써야 들이대는 두더지 머리의 순서는 매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세련된 프로그래머가 만든 두더지 게임이라면, 머리의 돌출 패턴을 연구하는 것 보다는 신경반응 속도를 재빠르게 키우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2023 FEB. 생산성의 역설

요즈음 미디어를 보면 온 세상이 AI 세계가 된 듯하다. 특히 작년 4분기에 출시된 인공지능 솔루션 ‘chatGPT’ 웹에 들어가면, 컴퓨터가 상황에 맞는 편지도 완벽하게 제시해 주며, 원하는 알고리즘 코드도 자동으로 만들어 준다. 후배 CEO의 말을 들으니 만든 코드 품질이 평균 개발자 이상이라고 한다. 이미 인공지능이 만든 우리말 책이 출판되었고, 주제에 맞는 삽화를 그리거나, 게임 캐릭터도 그려준다. 짧지만 동영상까지 만들어주는 수준이다. 정말 놀라운 진보이다. 일론 머스크가 예언했 듯이 2025년경에 인류를 초월하는 지성이 도래할 것이라는 ‘싱귤레러티’의 세상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어느 시대이건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소개되면, 솔루션 업체는 ROI(투자대비효과)에 대한 높은 생산성의 기대를 갖도록 부축인다. 1970년 80년대의 MIS, 생산관리, 1990년의 CAD/CAM, 공장자동화, 전략정보시스템, 2000년대의 GIS, ERP바람은 물론 최근의 빅데이터, Cloud, IOT, AI에 이르기까지 정보기술의 투자는 언제나 의사결정권자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한다.

그러나 경영의 세계에는 '생산성의 역설(Productivity Paradox)’이라는 말이 있다. 정보기술에 대한 기업의 투자가 산업사회 전반의 성장과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성장을 저해하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정보기술투자와 생산성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2022 Dec. 빙산모델과 도룡뇽알

경영학에 사일로 씽킹(silo think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말단직원부터 부문장에 이르기까지 타 부서와의 협력이나 고객만족 보다는 자신이 속한 부서(silo)의 이익만 쫓는 사고체계를 말한다. 세포가 분열하듯이 조직이 분화되면 사일로 씽킹은 예외가 없이 발생한다. 이를 직선형 사고(linear thinking)라고도 하는데, 조직의 균형발전을 위하여 극복해야 하는 문제점으로 말해진다. 심리학의 수평사고(lateral thinking)와 수직사고(vertical thinking)와는 다른 말이다.

그러나 사일로 씽킹이 항상 문제는 아니다. 상명하달 일사 분란해야 하는 경영환경에서는 가장 최적화된 사고방식이며, 구성원의 전문성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싸이로 씽킹은 시간으로나 공간으로나 시야를 넓혀야만 보이는 맥락관점을 간과하기 쉬워서 이슈가 된다.

부서의 이익을 도모한 당장의 행위가 향후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시간대를 길게 확장해야 보인다. 또한 한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파만파 어떤 결과를 유발할지는 공간을 확장해야 알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활동이 미래의 시간에 어떻게 전개될지, 확장된 환경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길고 넓게 예측하여 행동하는 맥락적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이처럼 사일로 씽킹과 대비되는 통 큰 사고체계를 경영학에서는 시스템 사고라 부른다.

2022 Oct. 유틸리티 산업과 카카오톡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로마인이야기' 제10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의 도로, 수로(aqueduct)와 같은 구조물을 다룬다. 로마는 BC 312년 이후 수백 년 동안 11개의 수로를 건설하여 물을 공급했다. 최장 91km 떨어진 수원지로부터 중력의 힘으로 로마 외곽에 도달한 물은 배수시설을 통하여, 황제가 후원하는 공중 목욕탕 및 개인 저택에 유료로 제공됐고, 시내 곳곳에 설치된 분수대와 공동 취수장에 언제나 풍부한 물이 무료로 공급됐다고 한다.

이런 수로와 같은 편의시설(amenities facility)을 서양에서는 유틸리티(utility)라 부른다. 유틸리티의 어원 utilitas 는 ‘공익적으로 유익하게 쓰이는 것’을 말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강조하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 철학의 어원이기도 한다. 도로와 수도에서 시작한 유틸리티 산업은 신기술의 발전으로 가스, 전기, 철도, 통신 등으로 그 범위가 더욱 확장되었다.

유틸리티는 하나의 편의서비스(전기, 가스, 수도, 열수, 하수)를 반영구적인 전송설비(전선, 파이프 등)를 통해 일상적으로 제공하는 특성을 가진다. 때때로 유틸리티와 에너지는 같은 산업군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에너지 산업은 생산된 전기, 가스를 유틸리티 사업 파트너를 통해서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유틸리티 사업은 생명체의 대사작용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생명이 살기 위해서는 물(수도)과 에너지원(전기, 가스)의 공급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고, 노폐물(하수)의 배출이 원활해야 한다. 한편 인간집단의 경우는 통신과 이동 인프라(도로망, 철도망)가 더해져 유틸리티 산업이 된다.

2022 Aug. 트위터, 운명의 5%

지난 7월 8일, 일론 머스크는 4월 25일에 맺은 트위터 인수계약을 취소했다. 머스크와 그의 재정자문인 모건 스탠리 측이 합리적인 비즈니스 목적을 위해 요청한 자료를 트위터가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이다. 이에 대해 트위터는 계약이행을 강제하려는 소송을 제기했다. 핵심 이슈는 가짜 및 스팸계정이 5% 미만이라는 트위터의 발표내용에 있다. 그러나 미국증권거래소(SEC)에 제출한 트위터의 공시 내용과 머스크 측 법률대리인의 편지를 검토해 보면, 트위터가 더 어려운 법문제에 얽혀 있는 듯하다.

 

먼저 머스크 측 변호인의 주장을 보자. 주된 줄거리는 ‘합병계약을 체결한 이후 2달 동안 수차례(5/9, 5/19, 5/25, 6/6, 6/17, 6/29)에 걸쳐서 가짜 및 스팸계정의 정보를 요구했으나, 트위터 측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이에 부응하지 않았다. 이것은 합병계약의 완성을 위한 머스크의 재정계획 수립에 심대한(material) 결손을 유발시키는 행위’라는 말이다. 

2022 June. 8초 디지털 메뚜기

어린 아들은 아기 때 깔고 자던 1 미터 남짓의 파란 담요를 방마다 질질 끌고 돌아다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다 헤진 그 담요를 덮어야 잠에 들었다. 찰스 먼로 슐츠(Charles Monroe Schulz)의 만화 피너츠(Peanuts)에 등장하는 꼬마 ‘라이너스”의 행동이 꼭 그러하다. ‘라이너스의 담요’라 불리는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안전담요(security blanket)라고 부른다.

 

애착(attachment)에 관한 1958년 해리 할로우(Harry Frederick Harlow)의 실험은 유명하다. 아기 원숭이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대리모에 대한 대조실험이다. 가슴에 젖병을 가졌지만 차가운 철사 몸체를 가진  대리모 인형과 먹을 것은 없지만 부드러운 담요 천으로 몸을 감싼 대리모 사이에서 아기 원숭이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65여년 전의 실험이 주는 메시지는 이렇다. 어린 영장류는 먹을 것을 주는 금속 엄마 보다도, 심리적 안정을 주는 담요 엄마에게 더욱 큰 애착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정서적 연대의 강화에 스킨십의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일이다. 그러나 애착이 집착이 되는 것이 문제이다. 영장류는 중독된 사물과 떨어지면 분리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2022 May. 이어령의 눈물방울

컴퓨터 저장 용량에 대하여 말하던 중 동료가 말했다. “미국에서 엄청난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무한대의 저장장치가 나왔대요!” 내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그런 저장장치가 있어요?”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아직 못쓰고 있대요. 지난 수개월 동안 포맷팅하고 있는데, 언제 끝날지 모른대요!” 아뿔싸! 낚였다. 무한의 개념세계와 구현기술의 유한함을 풍자한 유머로 생각된다.

수십년이 지난 예전 일이 생각났다. 이미 판매가 시작된 중형서버를 본사에서 갑자기 영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1’을 ‘3’으로 나누고, 다시 ‘3’을 곱하면 ‘1’이 안 나오고 0.9999999…의 무한소수로 처리하는 오류가 발견되었다는 이유이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계산을 컴퓨터는 원래 이렇게 처리한다. 사람들이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버 플로우 방지 알고리즘이 작동하여 “1”로 바꿔 주기 때문이다.

원주율도 마찬가지다. 3.14…로 무한하게 이어지는 원주율의 계산은 기원전 3세기 아르키메데스가 시작하여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장 최근의 계산은 2021년 8월 17일 스위스의 슈퍼컴퓨터로 108일 가량 계산한 결과, 62조 8318억5307만1796자리까지 계산했다고 한다. 의도를 가지고 자릿수를 끊어주지 않는다면 원주율이 들어간 공식의 계산은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합리성은 무한의 속성을 유한한 것으로 바꾸어 주는 결정과 통한다.

2022 FEB. 초월적 인간능력학 개론

2019년 10월말 네팔의 한 젊은이가 전세계 산악인을 놀라게 했다. 그의 이름은 니르말 푸르자(NIRMAL PURJA). 세계적으로 용맹하기로 이름난 네팔의 용병 구르카(GURKHA) 출신이다.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형들을 따라 용병의 길을 선택하였고, 영국군 특수부대의 멤버로서 몇 년만 더 근무하면 연금을 받을 좋은 기회도 있었다. 그런데 돌연 제대를 하고 PROJECT POSSIBLE 14/7이라는 등반계획을 짠다. 

푸르자가 위대한 것은 프로젝트 이름처럼 단 7개월이 안되어 8천미터급 14봉을 모두 등정하는 신기록을 세웠다는 것이다. 푸르자 이전의 최단 기록은 故 김창호님의 7년 10개월 6일이었다. 목숨을 바쳐 도움을 주고도 백인의 이름에 가려 잊힌 네팔 셀파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도전했다고 한다. 그를 보면 도대체 인간 능력의 한계는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진다.

때때로 후배가 경력개발에 대한 조언을 청할 때가 있다. 이 경우 내가 자주 들먹이는 키워드는 정체성(IDENTITY), 지배가치(GOVERNING VALUE), 능력, 역량, 지식 그리고 스킬과 같은 말이다. 정체성은 지배가치(혹은 지배원칙)와 통하는 단어로서 이것이 분명치 않으면 장기적 경력개발의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인생을 항해로 비유해 본다면, 배에서의 나의 역할이 정체성이고, 배가 향하는 방향이나 목적지가 지배원칙이 된다. 정체성이나 지배가치는 모두 상황 속에서 형성되는 관념이다. 미약한 정체성이나 다수의 정체성은 삶을 혼란으로 내몰아가겠지만, 지배가치는 여럿 가질 수 있고 가치별로 우선순위를 정할 수도 있다. 그 다음 용어인 능력, 역량, 지식, 스킬의 경우는 뜻이 엇비슷하여 구분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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